[19]
형의 PC에 있던 녹취록에서 발췌. 파일명은 "어떻게 인간을 사육할 것인가". 원제는 "Need blood? Feed human". 모기들의 대화를 형이 몰래 녹취한 것으로 보이며, 작성된 날짜는 2034년 10월 14일이다. 이는 교황 방한 하루 전이자, 내가 연구실에 침입해 모기들의 대화를 엿들었던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의 시점이다.
일기장, 연구일지, 그리고 녹취록 등 형이 남긴 모든 자료를 검토해 보아도, 형이 모기들의 본래 계획을 알아채고 그에 대해 기록을 한 건 이 녹취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것은 형이 모기들의 음모를 D-Day 하루 전에야 알아차렸다 걸 의미한다. 형이 2015년 10월 3일 일기장의 맨 마지막 문단을 지워버린 것은 아마 이 날이 아니었을까?
[20]
"고작 뇌염바이러스로 인간을 협박하려 하다니, 너희들의 계획은 황당한 수준이다."
나는 기죽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 했다. 하지만 모기들의 짐짓 훈계하는 듯한 말투는 계속 이어졌다.
[황당함이란 스스로 지식의 한계를 벗어난 현실을 마주했을 때 흔히 찾게 되는 도피처이니라. 너는 이미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황당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황당함을 느꼈을 때에는 뭔가 다르게 생각을 해 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 아니겠느냐? 우리의 계획이 황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계획이 너희들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이기 때문이니라.]
모기의 대답이 내 가슴을 찔렀다. 사실 나는 황당함 속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이라면, 이들이 세운 계획이라면, 완벽하지 않을 리 없다.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방 안에서는 내가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로 영원히 인간을 잡아둘 수는 없어. 인간은 자존심이 센 종이야. 너희들이 위협을 하더라도 여기저기에서 반란군이 조직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모기들을 멸종시키려고 하겠지. 너희들이 들어올 수 없는 벙커가 건설될 것이고, 그곳에서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프랑스뇌염에 대항하는 백신이 개발될 것이다. 더불어 유례 없이 강력한 초강력 모기약이 함께 개발될 지도 모르지."
그러자 모기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캉캉캉" 하고 울리는 기계음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었다.
[프랑스뇌염모기들이 풀려나는 날, 그들은 제일 먼저 교황을 물 것이니라. 그리고 교황이 타고 온 비행기에 숨어들어가는 것이지. 그들은 로마에서 교황이 죽을 때까지 기대리는 것이니라. 교황이 죽으면 세계 각지에서 조문단이 파견될 것이고,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프랑스뇌염모기들 역시 그 조문단이 타고 온 비행기를 이용해 전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각국의 대통령, 수상, 혹은 국왕을 암살할 것이니라. 너희들의 명령체계를 먼저 무너뜨리고, 우리는 신속하게 지도자 그룹을 제거할 것이다. 너희가 당황하는 동안 인간의 모든 대도시는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니라. 우리가 인간을 사육함에 있어서 필요한 인간 개체의 수는 10억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인류를 멸종시켜도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 정도의 숫자라면 우리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느니라.]
"그런 말도 안되는..."
내가 뭐라고 말을 잇기도 전에, 연구실 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마이크와 컴퓨터를 꺼버리고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컴퓨터를 끄자 드라큘라 백작도 작동을 멈추었고, "캉캉캉" 하는 기계음으로 번역되던 모기들의 웃음소리도 그쳤다. 연구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초가을이라 아직 밖은 어둑어둑했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다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경비원이 활동을 할 시간이었다. 발소리는 연구실 문 앞에서 멈추었고, 곧이어 카드키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책상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문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었다. 그는 연구실에 불이 켜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곧 불을 끈 후에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에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생각을 할수록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처음에 <드라큘라 백작>을 파괴하려고 연구실에 침입했지만, 이제 <드라큘라 백작>을 파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드라큘라 백작>은 모기들이 협박을 하기 위한 통신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애야 하는 것은 협박에 사용될 무기, 즉 어딘가에서 대량 사육되고 있을 프랑스뇌염모기들이다. 그리고 그 사육장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내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형밖에 없다. 결국 나는 형을 찾아가서 형의 미친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들 중에 하나가 바로 형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형의 고집을 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형이 인생을 걸고 추진하던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맨손으로 형을 찾아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모기들의 계획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자 다시 컴퓨터를 켰다.
그때였다. 컴퓨터 부팅 스위치를 누른 순간, 다시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번에는 발소리도 없었다. 연구실 문가에 방금 전 그 경비원이 총구를 겨눈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손을 들고 엎드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얼어붙은 채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를 제압한 후 그 경비원은 무전기로 어딘가에 통신을 하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발견했다고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에서 그 경비원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순간 귓가에 "캉캉캉" 하는 모기들의 비웃음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것은 환청이었다.
(계속)
형의 PC에 있던 녹취록에서 발췌. 파일명은 "어떻게 인간을 사육할 것인가". 원제는 "Need blood? Feed human". 모기들의 대화를 형이 몰래 녹취한 것으로 보이며, 작성된 날짜는 2034년 10월 14일이다. 이는 교황 방한 하루 전이자, 내가 연구실에 침입해 모기들의 대화를 엿들었던 날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의 시점이다.
(전략)
그 미치광이 모기 오타쿠 과학자 녀석이 교황을 암살하려고 프랑스뇌염모기들을 풀어놓으면, 우리의 계획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효과적인 계획 수행을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기가 '바이러스'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계획은 시간과의 싸움이 될 거라는 뜻이다. 새로운 바이러스라고 해도 최초 출연시부터 반 년이 지난 후에는 백신이 개발된다. 물론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사망자는 초기 1~2개월 내에 집중되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히 인류에 대한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면 유효기간 6개월짜리 바이러스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를 영원히 "사육"하려 하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성공할 수가 없다. 백신이 개발된 후에는 인간들이 우리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중략)
결국 우리의 협박수단인 바이러스의 유효기간을 영구적으로 늘리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백신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백신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인간 개체를 모두 죽여야 한다. 또한 인간들의 학습능력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고등교육을 받은 개체의 수를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줄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지도자 그룹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대략 인류의 70% 이상을 없애야 한다. 이것은 대응책이 없는 상태에서 초기 감염자를 최대한으로 확보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이다.
일기장, 연구일지, 그리고 녹취록 등 형이 남긴 모든 자료를 검토해 보아도, 형이 모기들의 본래 계획을 알아채고 그에 대해 기록을 한 건 이 녹취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것은 형이 모기들의 음모를 D-Day 하루 전에야 알아차렸다 걸 의미한다. 형이 2015년 10월 3일 일기장의 맨 마지막 문단을 지워버린 것은 아마 이 날이 아니었을까?
[20]
"고작 뇌염바이러스로 인간을 협박하려 하다니, 너희들의 계획은 황당한 수준이다."
나는 기죽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 했다. 하지만 모기들의 짐짓 훈계하는 듯한 말투는 계속 이어졌다.
[황당함이란 스스로 지식의 한계를 벗어난 현실을 마주했을 때 흔히 찾게 되는 도피처이니라. 너는 이미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황당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황당함을 느꼈을 때에는 뭔가 다르게 생각을 해 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 아니겠느냐? 우리의 계획이 황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계획이 너희들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규모이기 때문이니라.]
모기의 대답이 내 가슴을 찔렀다. 사실 나는 황당함 속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이라면, 이들이 세운 계획이라면, 완벽하지 않을 리 없다.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방 안에서는 내가 인류를 대표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로 영원히 인간을 잡아둘 수는 없어. 인간은 자존심이 센 종이야. 너희들이 위협을 하더라도 여기저기에서 반란군이 조직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모기들을 멸종시키려고 하겠지. 너희들이 들어올 수 없는 벙커가 건설될 것이고, 그곳에서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프랑스뇌염에 대항하는 백신이 개발될 것이다. 더불어 유례 없이 강력한 초강력 모기약이 함께 개발될 지도 모르지."
그러자 모기들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캉캉캉" 하고 울리는 기계음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었다.
[프랑스뇌염모기들이 풀려나는 날, 그들은 제일 먼저 교황을 물 것이니라. 그리고 교황이 타고 온 비행기에 숨어들어가는 것이지. 그들은 로마에서 교황이 죽을 때까지 기대리는 것이니라. 교황이 죽으면 세계 각지에서 조문단이 파견될 것이고,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에는 프랑스뇌염모기들 역시 그 조문단이 타고 온 비행기를 이용해 전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우리는 제일 먼저 각국의 대통령, 수상, 혹은 국왕을 암살할 것이니라. 너희들의 명령체계를 먼저 무너뜨리고, 우리는 신속하게 지도자 그룹을 제거할 것이다. 너희가 당황하는 동안 인간의 모든 대도시는 인간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니라. 우리가 인간을 사육함에 있어서 필요한 인간 개체의 수는 10억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인류를 멸종시켜도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그 정도의 숫자라면 우리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느니라.]
"그런 말도 안되는..."
내가 뭐라고 말을 잇기도 전에, 연구실 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마이크와 컴퓨터를 꺼버리고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컴퓨터를 끄자 드라큘라 백작도 작동을 멈추었고, "캉캉캉" 하는 기계음으로 번역되던 모기들의 웃음소리도 그쳤다. 연구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초가을이라 아직 밖은 어둑어둑했지만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다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경비원이 활동을 할 시간이었다. 발소리는 연구실 문 앞에서 멈추었고, 곧이어 카드키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책상 옆으로 고개를 내밀어 문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제복을 입은 경비원이었다. 그는 연구실에 불이 켜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곧 불을 끈 후에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에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생각을 할수록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처음에 <드라큘라 백작>을 파괴하려고 연구실에 침입했지만, 이제 <드라큘라 백작>을 파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드라큘라 백작>은 모기들이 협박을 하기 위한 통신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없애야 하는 것은 협박에 사용될 무기, 즉 어딘가에서 대량 사육되고 있을 프랑스뇌염모기들이다. 그리고 그 사육장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내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은 형밖에 없다. 결국 나는 형을 찾아가서 형의 미친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들 중에 하나가 바로 형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형의 고집을 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형이 인생을 걸고 추진하던 계획을 포기하도록 설득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맨손으로 형을 찾아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모기들의 계획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자 다시 컴퓨터를 켰다.
그때였다. 컴퓨터 부팅 스위치를 누른 순간, 다시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이번에는 발소리도 없었다. 연구실 문가에 방금 전 그 경비원이 총구를 겨눈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손을 들고 엎드리라고 소리를 질렀고, 나는 얼어붙은 채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를 제압한 후 그 경비원은 무전기로 어딘가에 통신을 하기 시작했다. 침입자를 발견했다고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에서 그 경비원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 순간 귓가에 "캉캉캉" 하는 모기들의 비웃음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것은 환청이었다.
(계속)
태그 : 모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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