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대왕 (Lord Of The Mosquitos) (1) by 민근

[1]

 2015년 10월 3일, 형의 일기장에서 발췌.


 나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을 괜히 어렵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지금 나를 온통 괴롭히고 있는 모기들 문제도 그렇다. 난 현재 자취방 침대에 누워, 늦가을까지 기승을 부리는 모기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모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인류가 발명한 모기 구제도구 중에서 가장 탁월한 것은 살충제도 아니고 모기향도 아닌, 모기장이다. 그러니 모기장을 하나 지르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기장은 공학적으로 아름답지 못하다. 어째서 문제의 발본적인 해결을 도모하지 않고, 외부와의 단절을 통한 얄팍한 회피만을 추구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모기장은 귀찮다. 일단 어디서 파는지 알 수가 없고, 산다고 해도 설치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서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자곤 했는데 자기 전에 한참동안 모기장 끈을 여기저기에 묶어야 했다. 

 모기장 이외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집을 봉쇄하는 것이다. 집을 비울 때만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집에 들어온 후로는 창문을 계속 닫아 두는 것이다. 사람이 없는 방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으므로 모기가 들어올 리 없지 않은가. 귀가 후에는 모기가 사람 냄새를 맡고 몰려들기 전에 잽싸게 창문을 닫아 버리는 거다. 이 방법은 널리 애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 창문을 열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이것은 의외로 치명적이다. 자취하는 인간이 어떻게 담배를 피울 때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수고를 감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이 방법은 취할 수 없다. 

 "넌 결국 만사가 귀찮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영양가 없는 망상만 펼치는 거야."

 예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저 말을 내게 던지고서 그녀는 나를 떠났다. 그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녀는 나를 감나무 아래에 입을 벌리고 누워 어떻게 하면 저 감이 떨어지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만 하는 녀석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어때서? 귀찮은 걸 지양하고 편안함을 위해 궁리를 하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인가?

 사실 나는 오래 전부터 모기 구제의 한 방법으로서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즉 모기들을 설득해 보자는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구상한 로봇 개미 "리빙스턴 박사"가 개미와 인간 사이의 외교관 역할을 했듯이, 로봇 모기가 인간과 모기 사이를 매개할 수 있을 것이다. 모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매커니즘은 리빙스턴 박사의 그것과 동일하다. 리빙스턴 박사는 개미들이 발산하는 페로몬을 원자 단위로 분석하여 실험을 통해 수집된 데이터와 대조하는 방식으로 번역을 한다. 예를 들어 개미가 빵조각을 발견했을 때 A라는 원자 2개와 B라는 원자 1개로 구성된 페로몬을 방출했다면, 화학식 "A2B1"이 곧 "빵조각" 혹은 "빵조각 발견"으로 변역되는 것이다. 이를 감지하기 위해 리빙스턴 박사는 페로몬을 분석할 수 있는 센서를 부착하고 있다. 모기들이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봇 모기를 만들어 이 방식을 응용하면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만약 모기들이 페로몬이 아닌 낼개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면, 여러가지 모기의 날개소리를 분석해서 "모기어-한국어 사전"을 만들 수 있다. 이는 실제로 20여 년 전부터 도입된 휴대폰 모기퇴치 부기서비스에서 이용된 원리이기도 하다. 

 아, 방금 특공 모기 한 마리가 이불 속으로 날아와 어깨를 물었다. 가렵다. 하지만 움직일 수는 없다. 이불이 작아서 몸을 뒤척이면 침대와 이불 사이에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모기가 날아들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 이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내가 구상하고 있는 이 방법은 분명히 성공 가능성이 있다.

 일단 모기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면, 두 종(種)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모기들에게 더 이상 인간의 피를 빨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결국 자멸을 하라고 종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모기를 멸종시키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우리는 최소한의 피해를 감수하며 그들과 공존할 방법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맨 마지막 문단은 가로줄로 지운 흔적이 있었다. 원문을 작성하고 적어도 몇 년이 지난 후에 지운 것 같았다.
 

 [2]

 형은 어렸을 때부터 모기에 관심이 많았다. 형은 모기에 물리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모기 자체는 좋아했다. 모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몇 번이고 보면서, 형은 마치 아름다운 예술작품에 심취한 것처럼 눈을 빛내곤 했다. 의사 부부인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형이 공대에 진학한 것은 단지 "실제 크기의 로봇 모기를 만들고 싶다"는 소원 때문이었다. 형은 어렸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그 소원을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형이 그 로봇 모기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내가 알게 된 건 한참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형은 대학생활에 잘 적응하지는 못했지만 성적은 언제나 수석이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에 몰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약간 비정상적인 천재들과 어울렸다. 출신성분이 다양한 그들이 형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형의 꿈은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뛰어난 공학자이면서도 카발라와 연금술, 그리고 신비주의의 신봉자였던 형은 그 모임을 "자끄 드 몰레의 복수"라고 이름붙였다. 형은 지독한 염세주의자였으므로, 나는 당시만 해도 그 이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형은 진지하게 자신들이 성당기사단의 후예라고 믿고 있었다. 

 비밀결사이자 연구자 집단인 "자끄 드 몰레의 복수"는 강남의 한 빌딩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자끄 드 몰레의 복수" 멤버 중에는 형의 정신나간 연구에 흥미를 보인 재벌 2세도 있었고, 신비주의에 빠진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자제도 있었기 때문에 연구환경은 언제나 불편함이 없었다. 

 "자끄 드 몰레의 복수"는 외형적으로는 평범한 엔지니어링 회사였다. 비밀결사의 핵심 멤버가 아닌 단순한 회사 관계자들은, 형이 로봇 모기를 만드려는 이유가 단지 숫모기 날개소리를 발산하는 로봇형 모기퇴치 도구를 개발하기 위함인 것로만 알고 있었다. 

 형이 3년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형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제멋대로 자란 머리와 수염 탓에 처음에는 형을 알아볼 수 없었다. 형은 모기 로봇이 완성되었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달에 완성한 <드라큘라 백작>은 베르베르의 리빙스턴 박사보다 훨씬 정교하고 성능이 뛰어나. 2만 6천여 개의 부품과 위성통신장치를 21밀리미터 크기의 이 초정밀 로봇에 장착시키기 위해 최첨단 나노기술과 항공기술, 그리고 모종의 루트를 통해 빼돌린 일급 군사기밀 정보가 동원되었지. 이 로봇은 모기들의 날개소리를 분석한 후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를 위성으로 전송한다. 보안채널을 통해 그 정보는 다시 나의 모니터에 출력되고. 물론 반대로 내가 한국어로 입력한 명령을 <드라큘라 백작>이 모기의 날개소리로 전환할 수 있지. 결론적으로 이제는 인간과 모기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된 거야." 

 나는 형의 기괴한 발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기랑 대화를 한다고? 그냥 쫒아버리기만 하면 될 것을 뭐하러 대화를 해?" 

 그러자 형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면 모기장과 다를 바 없잖아.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나는 인간이 모기가 혈액공급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인간과 모기 사이의 운명적인 악연을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화만 가능하다면, 인간은 모기와 합리적인 혈액 거래를 할 수 있을 거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만큼만 모기들에게 피를 빨리고 그 외에는 모기로부터 절대적인 자유를 얻는 거지.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공존이 아니겠니?"

 "형은 공상과학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어. 모기는 애초에 지능도 없다고. 걔네들이 주고 받는 대화는 끽해야  <아, 배부르다>, <으악, 모기약이다!> 정도밖에 없을걸?"

 "그건 나도 고민을 했던 부분이지. 나는 이들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를 설명할 자신도 없었고, 더 나아가 종을 뛰어넘은 조약의 의미를 이해시킬 자신도 없었어. 그런 생각을 하니까 나는 내가 지금껏 엄청난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공포감도 느꼈다. 며칠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한 채 나는 생각에 잠겼지. 어떻게 하면 모기들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인식시킬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결론은 났어?"

 "모기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내가 꼭 인간이라는 신분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그들에게 굳이 인간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거야. 나는 <드라큘라 백작>을 통해서 모기로 변신할 수 있잖아. 나는 그냥 덩치 크고 똑똑한 모기인 척 하면 되는 거고. 복잡한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간단한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공존방법을 찾으면 돼."

 형은 스스로 내린 결론에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형이 모기들과 대화를 시도하려 한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 진정한 목적은 여전히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형은 모기의 지능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형이 단순히 모기 구제만을 위해서 로봇을 만든 게 아닐 거라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한 달 후 형의 연구실에 몰래 침입해 연구일지를 훔쳐보고서야 나는 형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됐다. 형은 모기를 지배하고자 했다. 즉, 형은 모기들의 왕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3]

 2034년 10월 1일, 형의 연구일지에서 발췌.

 이제 5개월 후면, 자끄 드 몰레 사후 720 주기이다. 성당기사단의 모든 계획은 120년을 주기로 진행되어 왔고, 올해는 드디어 모든 계획이 완결되는 여섯 번째 주기의 마지막 해이다. 자끄 드 몰레의 복수는 16세기의 단두대에서 끝난 것이 아니다. <드라큘라 백작>은 이제 뇌염모기들의 날개소리를 완벽하게 습득했다. 2주 후에 교황이 방한하면, <드라큘라 백작>은 뇌염모기들에게 교황을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낼 것이다. 진정한 복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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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건 이 녹취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것은 형이 모기들의 음모를 D-Day 하루 전에야 알아차렸다 걸 의미한다. 형이 2015년 10월 3일 일기장의 맨 마지막 문단을 지워버린 것은 아마 이 날이 아니었을까? [20] "고작 뇌염바이러스로 인간을 협박하려 하다니, 너희들의 계획은 황당한 수준이다." ... more

덧글

  • Rain 2009/10/08 19:02 # 답글

    시작부터 범상치 않군요...
  • 민근 2009/10/08 19:08 #

    항상 관심가지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KayC 2009/10/08 20:27 # 삭제 답글

    형 이거 왠지 결말이 병맛일 필이야.. ㅋㅋㅋ(좋은 의미의 병맛 ㅋㅋㅋ)
  • 민근 2009/10/08 20:57 #

    ㅋㅋㅋ 내 소설의 공통점
  • 언럭키즈 2009/10/08 21:16 # 답글

    오오.. 성당기사단과 모기와 <리빙스턴 박사>라니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조합이네요.
  • 민근 2009/10/10 04:02 #

    그렇습니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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