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형과 마찬가지로 나도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독실한 신자인 부모님과 갈등이 많았다. 부모님과 싸우는 게 싫어서 억지로라도 기독교를 믿어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나는 도저히 신앙을 가질 수 없었다. 특히 나는 가식 투성이인 교회의 분위기에 적응을 할 수가 없었고, 굴육적인 가사의 찬송가를 부르는 게 너무 싫었다. 교리 자체도 너무 조악하고 모순 투성이였다. 의사로서 사회적으로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부모님이 지구의 나이가 1만 년도 안 됐다는 것과 공룡이 인간과 공존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그대로 믿고 계신다는 건 정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형의 종교관은 나보다 훨씬 극단적이었다. 형이 어쩌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대량학살을 도모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형도 원래부터 그 정도로 괴팍한 사람은 아니었다. 형이 그렇게 된 건 성당기사단 전설 때문이다. 성당기사단 전설에 대한 권위자들의 해석은 수도 없이 많지만, 형은 형 나름대로 독창적인 풀이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이 바로 모든 기독교인들의 암살이다. 형은 대학에 다닐 때부터 신비주의 서적에 파묻혀 지냈지만, 당시에는 그저 에반게리온에 등장한 세피로트의 나무를 베껴 그리거나 생 제르맹 백작을 모티브로 한 삼류 소설들을 읽는 게 전부였다. 형이 본격적으로 음모론에 빠져든 건 "자끄 드 몰레의 복수"라는 회사를 기획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형은 창업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자주 유럽을 방문했다. 하지만 내가 어깨 넘어로 관찰한 결과 형은 유럽에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과 성당에서 보냈다. 오래된 희귀 자료를 소장한 도서관, 그리고 성당기사단 전설에 관련된 성당은 거의 모두 누빈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형은 스스로 모종의 비밀에 접근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형과 헤어진 후 며칠동안 형의 일과를 관찰했다. <드라큘라 백작>을 파괴하러 연구실에 침투할 기회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마침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떄라서 나는 시간이 넉넉했다. 형은 매일 오후 1시쯤 오피스텔을 떠나 회사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새벽 4시가 다 되도록 건물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형은 퇴근할 때에도 항상 이상한 숫자와 코드가 적힌 서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4년 동안 추석에 집을 찾지 않았던 형이 올해에는 웬일로 집에 들리겠다고 한 것이다. 나에게는 별다른 핑계거리가 없었으므로 추석 내내 집을 비우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집에 머물다가, 연휴 기간 중 때를 봐서 밤에 몰래 집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연구실에 들어가려면 일단 두 가지 도구가 필요했다. 첫 번째는 일단 빌딩 자체에 출입하기 위한 보안카드였다. 이건 나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가 바로 <드라큘라 백작>이 보관되어 있는 "자끄 드 몰레 모기 연구실"의 출입키였다. 이건 오로지 형을 비롯한 극소수의 회사 간부들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형에게서 훔쳐내는 수밖에 없었다.
추석날 집에 들어온 형을 부모님은 반가워하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셨다. 부모님이 형의 얼굴을 본 건 거의 반 년만이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은 식사 내내 거의 말이 없었다. 형은 부모님의 기도가 끝난 후에야 상에 앉아서 수저를 들었다. 형은 저녁을 먹는 내내 뭔가 중요한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아버지"
형이 맛살이 들어간 부침개를 집으면서 드디어 입을 열었다.
"교황이 죽으면 추모회에 가실 건가요?"
오랜 침묵을 던진 형의 말이 너무 엉뚱해서인지, 아버지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
"그냥 별 의미 없어요. 지금 교황이 나이가 많잖아요.."
"이태리까지는 못 가도 서울에서 하는 거라면 당연히 가야지."
"아버지랑 어머니는 개신교잖아요. 굳이 갈 필요가 있어요?"
형이 다시 묻자, 이번엔 어머니가 대답하셨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다 같은 기독교잖니. 그건 그렇고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니?"
"저는 어머니랑 아버지가 안 가셨으면 좋겠어요."
형은 계속해서 부침개를 집어들었다. 아마도 형은 이 말을 하기 위해 불편함을 무릅쓰고 집을 찾은 것이리라.
"왜 그러냐? 무슨 일 있냐?"
"잘 먹었어요. 전 들어가서 책좀 보다가 잘게요."
형은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8]
형의 방은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불이 꺼졌다. 거실에서 TV를 보는 척하고 있던 나는 베란다를 통해 형의 방 불이 꺼진 걸 확인하고는 숨을 죽이고 형의 방문을 열었다. 형의 방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형은 낡은 매트리스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자켓을 벗지 않은 걸로 보아 형은 잠들기 직전까지 책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형의 자켓을 뒤져서 지갑을 찾았다. 지갑 속에는 "자끄 드 몰레 모기 연구실"로 들어갈 수 있는 카드키가 있었다. 형이 잠든 걸 다시 확인한 후에, 나는 지갑을 다시 자켓 속에 밀어넣었다.
몸을 일으켜 방에서 빠져나오려는 순간, 귓가에 모기 날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바닥을 들어 소리가 난 귓가로 가져다 댔다. '찰싹'하는 소리가 들렸고, 내 손바닥에는 배가 터져 피가 흘러나온 모기 한마리가 붙어 있었다. '찰싹' 소리는 내 귓가에서 울렸으므로 내게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아차 싶어서 형 쪽을 바라보았다.
대보름의 달빛 한줄기가 어두운 방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고, 나의 눈은 회색으로 칠해진 형의 눈동자 마주쳤다. 금방 잠에서 깬 부스스한 눈이 아니라 똑바로 부릅뜬 눈이었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너 여기서 뭐 하냐?"
형이 몸을 일으키면서 물었다. 그와 동시에 형은 습관처럼 자켓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지갑이 만져지자 형은 다시 손을 내렸다.
"깨, 깨우려고 한 건 아닌데 미안해. 창문이 열려있길래 닫으려고 왔어."
"창문은 왜?"
"형 모기 물리는 거 엄청 싫어하잖아. 이것 봐, 내가 벌써 한 마리 잡았어."
나는 형에게 모기와 피가 묻은 손을 내밀었다.
"아참, 여긴 연구실이 아니었지. 창문 닫아야겠구나. 고맙다."
다행히 형은 내가 카드키를 빼낸 걸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형은 창문을 닫은 후에 다시 매트리스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나는 카드키를 움켜쥔 채 재빨리 형의 방을 빠져나왔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현관문을 열고 지하주차장으로 달려간 나는 아버지의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한밤의 아파트 단지에는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새벽안개를 가르면서 나는 형의 연구실 빌딩을 향해 차를 몰았다.
[9]
2033년 7월 19일, 형의 일기에서 발췌.
누군가가 말하길, 영혼의 무게는 21그램이라고 한다. 모기의 몸무게는 대략 3밀리그램이고, 피를 가득 채웠을 때에는 13밀리그램 정도이다. 그렇다면 모기는 육신보다 영혼의 무게가 더 무거운 영적인 동물이란 얘기가 된다. 실제로 나는 가끔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드라큘라 백작>을 통해서 모기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모기들은 실제로는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러 하급 생명체인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 우매한 경전이 가르치기를 인간 이외의 동물은 인간에게 사용당하고 지배당할 운명으로 창조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소와 돼지를 잡아먹기 위해 사육하듯이, 인간은 모기들에 의해 혈액공급원으로서 사육당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계속)



덧글
언럭키즈 2009/10/17 17:39 # 답글
8번 문단 읽으면서 괜히 저까지 긴장해버렸습니다. 휴우..민근 2009/10/17 18:12 #
손은 눈보다 빠릅니다.... ㅎㅎ리군 2009/10/17 20:53 # 답글
우아 글 진짜 잘쓰시네요 뒷내용이 궁금해서 링크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려요ㅎㅎ
민근 2009/10/19 00:59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