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대왕 (Lord Of The Mosquitos) (6) by 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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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의 녹취록 중에서 일부를 글로 옮김. 날짜는 2033년 10월 8일. 즉 교황 방한 1주일 전, 그리고 내가 형의 연구실에 침투했던 날로부터 3일 전임.
 중간 중간에 <드라큘라 백작>에 의해 번역된 모기들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음. 

 나는 오랜 시간 모기와 대화를 하면서 드디어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모기들이 태고적부터 인간 못지 않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기의 개체 하나하나의 지능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들은 군집을 이루어 거대한 네트워크 형식의 두뇌를 형성한다. 우두머리 모기가 명령을 내린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집단적 지성에 의한 지배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고차원적인 매커니즘으로서, 쉽게 말하면 대략 30여 년 전에 유행을 했던 컴퓨터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저그(Zerg)"라는 종족의 집단적 지성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저그"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집단적 지성이 물질적으로 형상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저그"의 모든 개체는 "오버마인드(Overmind)"라는 중앙 제어 개체에 의해 통솔된다. 하지만 모기들에게는 그러한 통솔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모기들은 그 무형의 집단적 지성을, 편의상 이렇게 지칭하고 있었다. (여기서 형의 목소리가 끊기고, 기계음으로 된 모기의 음성이 나온다.)

 [우리...는... 그 가르침...을... "모기 대왕(Lord Of The Mosquitos)"이라고 부른...다.]

 (다시 형의 목소리가 시작된다.) 모기들이 대왕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저 집단적 지성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현재로서 알 길이 없다. 일종의 전자파나 에너지일 수도 있고, 아예 실존하지 않는 허상일 수도 있다. 만약 "모기 대왕"을 좀 더 연구해서 이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모기들과의 "대화"를 넘어서 모기들을 "지배"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내가 바로 모기 대왕이 되는 것이다.


[14]

 나는 모기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모기들은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오...늘 낮에도 어찌나... 말을 많이 시키던지, 그 인간 녀석 너무 귀...찮게 해.]
 
 모기들은 대화를 계속했다. <드라큘라 백작>의 시스템이 100% 가동되면서, 기계음이 끊기거나 늘어지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그 멍청한 녀석은 아...직도 우리가 자기를 모기로 생각...하고 있는 줄 알겠지?]

 [인간인 주제에 모기인 척을 하다니. 이젠 속는 척 하는 것도 지겨워.]
 
 나는 숨도 쉬지 못하고 그들의 엄청난 대화를 엿들었다.

 [그래도 고마운 녀석이잖아. 그 미치광이 덕분에 우리의 계획이 3백 년은 단축됐어.]

 [그래. 우리에게 무기를 주고, 협박을 할 수 있는 통신수단까지 만들어 줬으니까. 이제 인간들을 사육하는 건 시간 문제야. 피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지구는 온통 우리 모기들로 뒤덮이겠지. 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환하는 대격변을 겪으면서 진화도 빨리 이루어질 거고, 1억 년 정도 지나면 이 은하계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거야.]

 그 말을 마치고 모기들은 단체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캉캉캉캉" 하는 불쾌한 기계음이었다. 모니터에는 텍스트가 나타나지 않는 걸로 보아, 아마도 번역 시스템에 등록이 되지 않은 새로운 낼개소리가 감지된 모양이었다. 나는 문득 그 소리가 모기들의 웃음소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려움에 목을 잔뜩 움츠렸다.

 형은 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일까? 형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이건 애초에 성당기사단 전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모기들은 인간을 굴복시켜 먹이사슬을 거꾸로 뒤집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형은 모기들에게 이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기들은 염세적이고 과대망상증이 있는 형을 이용해서 인간을 정복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모기가 말한 "무기"는 곧 살상력이 높은 프랑스뇌염모기를 말하는 것이고, "협박을 할 수 있는 통신수단"이란 다름아닌 <드라큘라 백작>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당장이라도 인간들 피를 빨고 싶지만, 교황이 한국에 올 때까지는 참아야 돼. 지금은 번식장에 있는 프랑스뇌염모기들이 다 갇혀 있잖아. 그 미치광이 녀석이 자기 계획을 수행한답시고 프랑스뇌염모기들을 풀어놓으면, 비로소 우리 세상이 열리는 거지.]

 나는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모기들은 형이 교황을 암살하려고 프랑스뇌염모기들을 풀어놓을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은 <드라큘라 백작>을 통해 그 모기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형의 착각이다. 모기들은 거꾸로 <드라큘라 백작>을 이용해서 인간들을 이렇게 협박할 것이다.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피를 바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프랑스뇌염으로 죽을 것이다."


[15]

 형의 녹취록 중에서 일부를 글로 옮김. 날짜는 2033년 10월 11일. 즉 내가 형의 연구실에 침투했던 날.
 <드라큘라 백작>의 번역 소프트웨어가 나날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모기들과 보다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불과 며칠만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그 중에 중요한 사항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모기들은 뛰어난 지능이 있었고 인간보다 훨씬 더 긴 종족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렵생활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수컷 모기들은 과일즙이나 나무의 수액을 찾아서 날아다녀야 했고, 암컷 모기들은 짐승의 혈액을 채취하기 목숨을 걸고 돌격해야 했다. 그들이 이러한 수렵생활을 졸업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인간들과 다른 형태의 지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소유욕과 지배욕 때문이었다. 수렵생활에서는 하루하루의 수확량과 소비량이 서로 비슷했으므로 음식과 재물을 축적할 수 없었고, 따라서 사회적 계층이 생겨나기 어려웠다. 반면에 농경생활에서는 소비량보다 수확량이 더 많아지게 되므로 빈부격차가 발생하게 되고 계급사회의 맹아가 싹틀 수 있다. 인간들은 모기들과 달리 각 개체의 두뇌에 의존하는 방식의 지능을 발달시켰기에 진화를 할수록 사적 욕구가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농경생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기들은 집단적 지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개체의 안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기들에게는 사적 욕구라는 개념이 없다. 암컷 모기가 피를 빠는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알을 낳기 위한 단백질을 공급받기 위해서이다. 물론 그 개체는 배가 고프다고 느껴서 피를 빠는 것이겠지만, 개체를 지배하는 집단적 지성의 의지는 그렇지 않다. 집단적 지성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효과적으로 종족을 보전하는 것"뿐이다. 이미 수렵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던 모기들은, 모험을 감수하며 농경생활에 돌입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며 언어로써 의사소통을 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점차 모기들을 위협할 수 있는 종으로 성장했다. 인간들은 놀라운 지능을 발휘하여 모기들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구제도구들을 발명했다. 모기들은 그들의 조상이 최초로 모기향의 냄새를 맡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모기향을 맡으면 차마 날개짓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격렬한 고통이 엄습을 하고 곧이어 절명의 순간이 찾아온다고 했다. 특히 분사형 모기약은 스치기만 해도 키틴질의 껍질이 녹아내리릴 듯 따끔거린다고 한다. 심지어 별다른 구제도구가 없더라도, 인간은 손을 이용해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날렵하게 모기들을 사냥할 수 있지 않은가.

 수 천년에 걸쳐 조용히 인간을 조사한 모기들은, 이 위험한 종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농경사회로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인간을 멸종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특별한 관리방식을 도입해서 신개념의 혈액공급원으로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모기는 아직 결정이 내려진 바가 없다고 했고, 어떤 모기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형이 2015년 10월 3일의 일기장 맨 마지막 문단을 가로줄로 지운 것은 이날 이후인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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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조롱이 2009/10/22 15:19 # 답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소재도 참신하고 읽기도 쉬워요. 어떻게 될 지 궁금하네요... 모기 천지인 세상이라니 생각도 하기 싫군요 ㅠㅠㅠ
  • 민근 2009/10/22 16:20 #

    감사합니다. ㅎㅎ 이제 좀더 추워지면 당분간 모기들 안 보겠네요.
  • 언럭키즈 2009/10/22 17:55 # 답글

    속고 속이는 게임에서 모기가 몇 수는 위였군요..
    모기에게 사육당하는 인간이라니, 생각만해도 몸이 근질근질 거리는 것 같습니다 ㅠㅠ
  • 민근 2009/10/23 20:38 #

    근질근질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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