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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들의 대화를 듣던 나는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언젠가 형의 연구일지에서, 지구의 진정한 지배자는 인간이 아니라 모기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제는 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모기들의 지능을 감안해 보면 적어도 백악기가 끝날 때까지는 모기들이 이 행성의 독보적인 지배자들이었을 것이다. 공룡들은 모기를 위협하기엔 두뇌 용량이 턱없이 모자랐고, 덩치가 너무 커서 급변하는 초기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모기들은 인간이 직립보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가만히 관찰을 해왔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불을 다루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 종이 행성의 패권을 두고서 자신들과 대립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 백만 년에 걸쳐 끈질기게 관찰을 한 결과 모기들을 지배하는 집단적 지성, 즉 "모기 대왕"은 결국 인간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미치광이 인간 공학자를 이용해서 살상력이 지대한 대(對)인간 병기, 즉 프랑스뇌염모기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그 병기로 인간을 협박할 수 있는 통신수단까지 만들어냈으니, 그게 바로 통역 로봇 <드라큘라 백작>인 셈이다. 이제 3일 후 형이 교황을 암살하기 위해서 프랑스뇌염모기들을 사육장에서 해방시키는 순간 그들은 곧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진리"라는 개념에 대해 25년간 형성해온 나름의 가치관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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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일기장에서 발췌. 날짜는 확인 불가. 다만 내가 형의 연구실에 침투하기 며칠 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모기들을 좋아했지만, 그 이유는 나도 잘 몰랐다. 하지만 모기들과 대화를 하고 이들을 알게 될수록 내가 왜 이들에게 끌렸는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모기들에게 인간 못지 않은 뛰어난 지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내가 더 흥미를 느낀 것은 그들의 독특한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비록 개체들 간의 사소한 의사표현은 날개소리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모기들의 거시적인 결정은 "모기 대왕"이라는 하나의 집단적 지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모기 대왕"은 우두머리 모기 한마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모기들 사이에 마치 텔레파시처럼 공유되는 하나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접하지 못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한마디로 모기들은 서로 완벽한 소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모기들의 정신은 공유되고 있으므로, 그들은 서로 오해가 생길 일도 없고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 모기 사회에서 부적응자나 소수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답고도 고차원적인 시스템인가?
나는 이러한 의사소통 방식을 인간들의 사회에도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모기 대왕"과 같은 집단적 지성이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만 있다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열릴 것이다. 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에는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하고자 했던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며, 인간들은 영적으로 한단계 진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모기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인간에게도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 오랜 시간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지금 내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일단 인간들의 정신이 공유되기 위해서는, 인류의 분열을 조장하는 종교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대한 성당기사단의 뜻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나의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제일 먼저 지구상에서 모든 기독교인들을 없애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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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랜 상식과 새로운 진실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성당기사단 전설을 믿지 않는 일반인과 이를 믿는 추종자들 간의 거리만큼 먼 것이었다.
성당기사단 관련 서적들을 읽다 보면 "세계의 지배자들", "오의(奧義) 전수자", 또는 "아가르타(Agharta)의 제왕"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이것은 비밀결사조직 내부에서도 핵심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지도자 계급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이며, 넓게는 일반인들과 구분하여 성당기사단원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연금술에서 말하는 "현자의 돌"과 철학적으로 상통하는 개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건 결국 "있다면 킹왕짱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신비주의와 연금술에 심취한 자들은 이 허상을 믿는다. 일반인들도 아주 사소한 계기로 이러한 허상에 빠져들 수 있다. 이것은 곧 "절대성"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며, 본질적으로는 종교와 그 작동원리가 동일한 것이다.
일반인들은 성당기사단 전설을 하찮은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러한 거대 조직이 물밑에서 수 세기동안 활동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항상 이렇게 질문을 한다. 반면에 성당기사단 전설의 신봉자들은 "진실은 언제나 상식 너머에 있다"는 식으로 정반대의 시각에서 접근을 한다. 스스로의 상식을 수정할 정도로, 성당기사단 전설은 그들에게 절대적인 것이다.
내가 어느쪽에 해당하는지는 명백하다. 나는 상식이 곧 진실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신을 믿지 않는 것도 교리와 경전의 내용이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기들의 대화를 들은 후에는, 문득 지금껏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새삼스럽지만 절대적인 진실을 자신의 상식에 가두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최초로 주장했을 당시에 일반인들이 느꼈을 황당함은, "모기가 인간을 사육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서 느낄 황당함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황당함"은 곧 상식과 진실 사이를 메우는 교각과 같은 것이다. 어쨌든 나는 내 눈으로 교각을 확인하면서 상식과 진실의 머나먼 틈을 건너고 있었다.
모기들의 은밀한 대화를 직접 듣고 있었기 때문에 황당함보다 두려움이 컸다. 한동안 나는 모기들이 눈치를 챌까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은 금세 돋아났다. 자칭 만물의 영장이 종(種)적 거만함을 쉽게 버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아직 상식과 진실 사이의 다리를 완전하게 건너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범인류적인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지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고민 끝에 약간의 여유를 얻은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 모기들은 아직 갇혀 있어."
생각을 해보니, 내가 모기들에게 들킬 것을 염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들은 대화내용이 모기들의 입장에서는 인간들에게 새어나가서는 안 될 곤란한 내용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연구실에 있는 몇 마리의 모기들이 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들은 외부와 연락을 할 수도 없으므로, "인간에게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모기들에게 전할 방법도 없는 것이다.
내가 혼잣말을 하자마자 모기들의 대화소리가 딱 끊겼다. <드라큘라 백작>이 나의 음성을 모기들의 날개소리로 자동번역을 한 모양이었다. 이제 모기들은 주변에 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날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뭐야, 인간이 있었잖아.]
[우리 대화를 다 들었겠는데? 이거 큰일 아니야?]
모기들 역시 당황을 한 눈치였다. 사실 지금 연구실에 있는 모기들을 없애버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모기들이 갇혀있는 유리상자 안으로 살충제 가스를 살포하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서 얻어내야 할 정보가 있었으므로, 일단 대화를 가장한 협박을 시도했다.
"그렇다. 나는 인간이다. 너희들의 계획은 모두 들었다."
나의 목소리는 <드라큘라 백작>에 의해서 텍스트로 전환되었고, 그 텍스트는 다시 모기의 날개소리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그 날개소리는 스피커를 통해서 사육장 내부에 있는 모기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모기들이 답신을 했다.
[우리의 실제 모습을 보았구나, 인간이여. 너는 진정한 고등 생명체의 존재를 알게 된 최초의 인간이니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라.]
인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모기의 말투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마치 신이 피조물을 향해서 계시를 내리는 것과 같은 말투였다. 손톱보다도 작은 모기가 인간에게 위엄을 과시하자, 나는 매우 황당했다. 자신들의 목숨이 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고도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 나는 약간 화가 나서 감정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손가락만 움직이면 너희들은 살충제 맛을 보게 된다. 인간을 무시하지 말라. 당장 너희들의 계획을 모두 털어놓지 않으면 모두 다 살충제에 절여질 줄 알아라."
그러자 조금 전에 들었던 "캉캉캉캉" 하는 소리가 또다시 스피커를 통해 격렬하게 울려퍼졌다. 이제 나는 그 소리가 모기들의 웃음소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모기들은 나를 비웃고 있는 것이었다.
[협박이라는 개념은 너희 하등한 동물들에게나 존재하는 것이니라. 우리들에게 개체의 안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네가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한들 문제될 것 역시 없느니라. 너 역시 지금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터인데, 네가 그걸 다른 인간들에게 전한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것을 믿겠느냐? 너는 실제로 선구자인 셈이지만, 미개한 인간들은 너를 정신병자 취급을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 불완전한 하등 생명체들의 한계이니라.]
나는 사상 최초로 다른 종에게 모욕을 당한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모욕감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근원을 모를 두려움이었고, 바닥을 모를 두려움이었다. 이것은 혹시 신앙을 가진 자들이 신을 간접적으로 접했을 때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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